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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팔이

사실 요즘 동네 주변이나 회사 주변 말고 밥집이든 지나가던 잡화상 (매우 예스럽게 말하자면) 이든, 가게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게 뭔가 해당 가게의 본질---맛있는 음식, 유용하거나 이쁜 물건들---과는 벗어나서, 그냥 놀이나 경험을 판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뭐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하겠지만,,,

 

성수동에서의 실제로 살 물건이 있는건 아니지만 신기해서 들어가 보는 팝업스토어라던지, 귀여운 물건들을 보고 와 굉장히 귀엽다라고 말하고서는 사지 않고 뒤돌아서는 소품샵들이라던지 (이거 정말로 궁금한 건데, 소품샵에서의 실구매율은 얼마나 될지 다른 업종들과 비교해서 측정해보고 싶다). 사실은 피시방에서 끓여 먹는 짜계치가 더 맛있지만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맛과 멋좀 부리려고 가는 다이닝이나---적어도 나는 막입이라서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모두 "경험팔이"로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경험팔이라 한들, 아무렴 어떠하랴, 양질의 경험만 제공하고 좋은 놀잇거리가 되면은 아무래도 그만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몽중식의 경험팔이는 훌륭하다. 재방문을 3회 한 다이닝 (이라고 부르는 게 맞긴 할까?) 은 일단 지금까지 최초.

 

그래서, 어떤 경험을 파나요?

우선, 몽중식은 식당이다. 당연히 음식 판다. 일반적인 다이닝 처럼 매 시즌별로 메뉴가 바뀌고, 메뉴는 고를 수 없이 코스다. 중식을 기본으로 하고, 고량주 페어링을 할 수가 있다. 그럼, 일반적인 다이닝의 경험팔이를 넘어서, 무엇이 몽중식을 진짜 경험팔이로 만드는가? 

 

몽중식은 테마가 있는 식당이다. 이러한 테마를 판매한다. 하나의 테마를 이루는것은

theme_key = ('영화', '음식', '스토리텔링', '드레스코드', '소품')

 

 

의 quint로 구성된다.

 

이들 중에서, 해당 테마의 identity를 결정하는 것은 영화이다, 매 계절별로 (주로 중화권의) 영화를 선정하고, 해당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면서 음식이 서빙되고 (특정 장면이나 인물에 연관 지어 음식이 결정된다), 해당 영화와 관련한 드레스코드를 제시하며, 식사 중에는 스토리텔러 (라고 부르던가? 무튼 이걸 담당하는 분이 진짜 있다)가 영화의 흐름을 설명해 준다. 처음 자리에 앉으면, 영화와 관련된 소품들과 영화의 스토리와 그 스토리에 해당하는 음식을 설명해 주는 "그림 카드" 같은 것들이 자리에 놓여있다---코스가 지날 때마다, 그림 카드를 한 장씩 넘겨준다.

 

'소품' 에 해당하는 것들. 영화 '암살' 에서의 안옥윤씨의 안경과 총, 그리고 뭔가 개화기스러운 물건들과 안경집.
'드레스코드' 에 해당하는것들. 사실은 한국적인 미가 드레스코드였으나,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극중 인물들의 분장을 했다. 콧수염은 그려진것.

 

(스포주의) 암살에서의 염석진 (이정재분) 씨를 상징하는 음식. 시꺼먼 마음을 가지고 있대나 뭐래나. 뭐 대충 들리는대로 듣고 잘 파먹었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 외에도 몇 가지 깨알 같은 재미가 있다. 고량주 페어링의 3-4번째 즈음에는 (기억 잘 안남) 항상 몽비어 (맥주를 양조하시더라. 몽중식 자체맥주)에 다 함께 고량주를 집어넣어야 한다던지...

하나의 테마를 관통하는 영화로 꿰어진 여러 가지 경험요소들이 몽중식을 진짜 경험팔이로 만든다.

 

라고 얘기했는데, 그냥 가벼운 맘으로 재밌어 보이니까 가보자 해도 충분한 곳. 다만, 예약이 쉬운 편은 아니었던 걸로. 그리고 재방문자가 매우 많다. 매우... 중간에 처음 와보신 분들 손들라고 시키는데, 그 수가 많지 않다.

식당인데, 맛은 있나요?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오락가락한다. 워낙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고, 중식에 기대하는 어느 정도의 자극적인 맛이 있는 상태에다가, 입도 막입이다 보니 "아 마라샹궈 생각난다" "아, 불닭 생각난다" 할 때가 있다. 다만, 다채롭다. 보통 9코스로 진행되는데 뭔 어디서도 먹어본 적 없는 걸 먹을 때가 흔하다. 그리고 보통은 "먹을만하다" "맛있는 것 같다" 이상일 때가 많다.

신기한데 (내입에만) 별로였던것의 예시.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위에는 표고버섯 아래는 튀김이었다. 튀김 속이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나네... 불호였던 이유는 (1) 내 기준 간이 삼삼함 (2) 표고가 너무 딱딱했음 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테마와 경험에는 충실하다. 안옥윤씨가 백화점에서 안경을 샀을때를 표현하는것... 그러니까, 저 표고버섯이 안경이다 미친...
페어링때 나온 술. 무려 이름이 혁명 (레볼루씨옹) 소주다. 붉은 색체와 저 특유의 선전 그림체. 아! 낫과 망치를 가져오라. (따위로 생각했는데, 사실 그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스토리텔러분이 말해주더라)

재방문할 건가요?

흥미로운 영화 테마가 있다면 가고 싶다. 옛 홍콩영화 테마에서, 가죽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플래시 페이퍼에 100달러를 프린팅 해서 불태워버리고 싶다. 경험증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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